#1 #2 #3 #4

#다시시작

#그냥읽자

#꾸준히읽자

#빡독

#빡세게읽자

다시시작 한다.

궁극의 목표는 #1000권읽기

첫번째 목표는 #100권읽기

#일단 오늘 한 줄 써 봅시다

내가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책을 쓰고 싶어서 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많은 글을 읽다 보면 표현력도 많이 늘고, 어휘도 다양해 져서 좀 더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짧은 문장이라도 올바르게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제가 쓴 글들을 보며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나 조차도 인정해 주지 않는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일단은 올바르게 글을 쓰는 방법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글쓰기 관련 책들을 찾아 보았고, 그 중 선택해서 읽은 책 입니다. 작가인 김민태PD님은 글을 참 맛깔나고 읽기 쉽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좋은 책이라고 들여다 보면 어휘가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중도 포기한 책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김민태작가님은 너무 경박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있어보이기 위해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하지 않아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SNS나 블로그에 직접 올렸던 글들을 예로 들어줘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해서 글을 읽을때 술술읽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본인이 글을 쓰고 싶은데 망설이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본문중에서

 

​쉴 틈 없이 북적거리는 사무실에 적막이 흐를 때가 있다. 졸음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면 어김없다. 2011년 11월, 그날 오후도 그랬다.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일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스쳤고 햇볕은 따뜻했다. 눈이 곧 감길 것 같았다. 그때 책상 위에 뒹굴고 있는 이면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상태가 양호한 놈을 잡아 내 앞으로 끌어왔다. 떠오르는 단어를 적었다. 마치 붓글씨 연습을 하듯 또박또박 썼다. 졸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용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문장이 내게 걸려들었다.

10대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에 매달린다.

대입 시험이 임박했던 때여서 그랬을까? 갑자기 왜 수능에 대해 썼을까?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운율을 맞추고 싶어졌다.

20대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글을 쓰자 그것이 남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갑자기 전환됐다. 첫 번째 문장이 시대에 대한 관찰이었다면, 두 번째 문장은 나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아홉. 나는 30대 끄트머리에 와 있었다. 다음은 뭐라고 쓸까? ‘정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정작, 30대가 되면 다시 원점에서 꿈을 고민한다.

세 문장을 써놓고 멀뚱히 쳐다봤다. 기가 찬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인생이 단 세 줄로 정리된다니! 그것도 시종일관 우울한 톤으로!

​2018년 11월 4일

미스 사이공이라는 쌀국수집에 갔다. 가격이 쌀 것 같아 들어섰는데 역시 인기가 있다. 입구 우측에 자동주문기가 있다. 이제 이 정도의 문명은 낯설지 않다. 벽에 붙은 메뉴를 봤다. 소고기 쌀국수 4,000원. 내 기대보다 2,000원이 싸다. 반값 쌀국수가 등장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니 딩동 소리와 함께 음성 안내가 나왔다. 녹음된 성우 목소리다. 이 부분이 좀 특이했다. 식당에서는 처음 경험해본다. 아르바이트 시스템이 자리잡은 롯데리아만 해도 “새우버거 시키신 분!” 이 정도는 호명해주지 않나. 쓱 둘러보니 가게 사장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다. 베트남 청년 두 명이 전부다. 그것도 홀에는 없고 주방에만 있다. 혁신적인 프랜차이즈다. 맛도 기존에 가던 곳과 큰 차이가 없다. 혼자 먹기엔 외려 종업원이 없는 게 편하기도 하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패스트푸드인데 주방이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더 싸지겠네. 여차하면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식당에서 밥만 먹고 나올 수도 있겠구먼. 이미 와 있는 미래라 생각하니 더 씁쓸하다.

1920년대 뉴욕의 어느 한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따뜻한 봄기운이 코끝을 간질이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발걸음은 가벼웠다. 거리 한쪽 구석에서 한 남자가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나는 장님입니다(I am blind).”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동전을 받을 깡통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지나는 그 누구도 그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저 빠른 걸음으로 걸인 앞을 스쳐갈 뿐이었다. 걸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때 한 신사가 걸인 앞에 멈춰 섰다. 그 남자는 걸인의 목에 걸려 있는 팻말을 빼더니 “나는 장님입니다.” 대신 새로운 문구를 적어주었다. 그리곤 그 팻말을 다시 걸인의 목에 걸어주고 제 갈 길을 향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사가 팻말의 문구를 쓰고 간 후 찬바람만 들락거리던 깡통에 동전이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걸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뉴요커들이 팻말의 문구를 보더니 흔쾌히 적선을 하기 시작했다. 그 팻말의 글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봄은 곧 오는데, 저는 볼 수가 없답니다.

 

(Spring is coming. But I can't see it.)”

이 이야기 속 신사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부르통Andre Breton이다. 부르통은 그저 걸인이 목에 걸고 있는 팻말 문구를 바꾸어주었을 뿐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같지만,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만약 이 책에서 내용을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최후의 한 문장만 남긴다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는 내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 즉 스스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인 내가 남기고 싶은 단 한 문장의 메시지는 이렇다.

‘있었던 일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법이 일어난다.’

있었던 일에 대해 쓴다는 것은 자기 경험에 대한 서사, 즉 일기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글쓰기 치료 혹은 저널 치료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만큼 개인의 정서 관리와 밀접하다는 의미다. 내 글쓰기의 첫 시작도 일기와 같았다. 비록 일기라고 정의를 내리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되돌아보니 그것은 일기 쓰기와 다르지 않았다. 있었던 일에 대해 쓰는 것은 여러모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은 글쓰기다. 무엇보다 ‘시작하기에 쉽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